라자 암팟(Raja Ampat) - 8 (2019-10-09, 자카르타)

2019. 10. 16. 13:09Papua

Adhi가 가이드와 여기 숙소를 잡아주지 않았다면 공항에서 21시간을 보냈거나 공항에서 가까운 숙소를 잡아서 아무 것도 못하고 들어앉아 있었겠지. 마카사르가 처음이기 때문이겠지만 딱히 볼만한 것을 찾지도 못하겠는데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소한 행운들이 채워주고 있다.

1층 식당도 깔끔하고 예쁘게 잘 꾸며져 있다. 아침이 되니 안보이던 밤에는 안보이던 손님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

 

배가 별로 안고파...

 

가이드는 전날 말한 시각에 맞추어서 왔고 오전 시간을 보내기 위해 공항을 지나 어디론가 갔는데 저 길을 따라 7시간을 가면 또라자의 장례축제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아마 하루만 더 여유가 있었다면 가자고 했을 텐데... 애초에 계획을 꼼꼼하게 세우고 온 여행이 아니라 그때그때 즉흥적인 결정이 나에게는 더 맞는 것 같은데 아쉽다. 아마 여길 다시 오지는 않을 것 같아서.

전혀 인도네시아스럽지 않은 중국 계림이나 베트남에서 갔던 곳과 비슷한 모습의 Dermaga Dua Rammang Rammang를 구경했다. 논 사이사이로 저런 바위들이 솟아올라 있다.

방이 1층이 아니고 저렇게 올린 이유가 뱀이나 짐승 때문에 그런거냐고 물으니 1층에는 가축을 키우기 위해서라고 한다.

가게도 없어서 차에 물건을 싣고 와서 팔고 나간다.

오전 시간을 보내고 공항으로 돌아와서 네 번째 가루다를 타고 자카르타로 간다. 자카르타가 나에게 제일 좋은 도시는 아니지만 항상 그리웠다. 반둥이나 족자, 심지어 발리를 갔을 때도 가끔 우울할 때가 있었는데 자카르타로 돌아오면 공항에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부터 마음이 편안해졌다.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길고 잦은 출장으로 몇 번이나 연말연시를 보내야 했던 곳이라 이곳이라도 마음이 고향이 되어야 그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이겨낼 수 있었고, 항상 농담처럼 여기 친구들에게 자카르타가 내 홈타운이라고 말하곤 해서 모두들 그렇게 알고 있으니까. 대책없는 교통체증에, 잠시 긴장을 풀면  한 푼이라도 더 빼먹으려 하고, 불리하면 못알아 듣는 척 하거나 잔돈이 없다는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도시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던 도시다. 3만 명이 넘는 한국인이 산다는 도시에 유일하게 아는 한국인이라고는 지금은 없어진, 밤늦게까지 일을 하다가 문닫는 시간 직전에 전화해서 지금 출발할테니까 문닫지 말아달라고 하면 기다려서 삼겹살을 원없이 먹게 해주었던 오장동 식당 아주머니 밖에 없다. 지금은 무슨 일을 하고 계시려나...

 

일이 너무 많아 저녁도 못먹고 들어와서 술탄호텔에서 한 밤 중에 룸서비스로 먹었던 소꼬리탕이 너무 맛이 좋아서 이곳 친구들에게 나는 Sop Buntut이 너무 좋다고 했더니 꼭 가봐야 한다고 해서 찾았다가 자카르타를 오면 꼭 한 번은 들르는 퍼시픽 플레이스의 보고르 식당을 또 찾았다. 비싸서 자주 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출장마다 한 번은 왔었는데 자카르타를 떠나기 전에 여기에서 마지막 저녁을 하고 싶었다.

몇 년 사이에 가격이 너무 올랐는데 어차피 마지막 한 번이고 운이 좋아서 환전해온 돈을 거의 쓰지 않아 부담도 없다.

 

!!!!!!!!!!!!!!!!!!!!!!!!!!!!!!!!!!!

자카르타의 교통지옥이 과거보다는 좋아졌을지도 모른다는 순진한 기대 때문에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도 쉽지 않았다. 열차역으로 가는 택시를 30분 넘게 잡지 못해 술탄호텔까지 걸어 내려왔지만 여전히 택시를 잡을 수 없었는데 마음이 급하니 앱을 사용하지 않고도 지나가는 Grab을 잡아서 그 갑갑한 도로를 10분만에 건너뛰고 이미 바가지 금액이지만 팁까지 줘버렸다. 흰 이빨을 드러내며 좋아하는 오토바이 기사를 보니 뭐 나도 기분이 좋다. 운좋게 택시를 탔으면 1시간 동안 도로에 갖혀있다가 중간에 내려서 뛰었겠지. 이게 자카르타였고 한 때는 이런 짓도 즐겼으니까, 그런 기억이 떠올라서 나쁘지 않다.

 

시간이 지날 수록 라자암팟은 좋았다.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어서 그런지 비밀스러운 서재같은 느낌이기도 했고, 다녀온 후에도 어디를 갔는지 물으면 라자암팟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모르니 설명하기도 어려워 그냥 파푸아를 갔다고 하는게 더 낫긴 했지만 왜 갔냐고 물으면 더욱 답하기가 어려웠는데 오히려 그게 더 좋은 느낌이 든다. 라자암팟만큼이나 좋은 기억은 들어갔다 나오는데 걸렸던 긴 여정이었다. 과정 중 벌어진 사소한 일들과 시간에도 쫒기지 않았던 것이 차분한 기억으로 남게 해준다.

대부분은 스쿠버 다이빙을 목적으로 라자암팟을 찾지만 나는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그냥 Adhi가 오래 전에 별 생각없이 보내 준 술라웨시와 파푸아의 몇 군데 중에 골랐을 뿐이고, 복잡한 과정과 짧은 시간에 다녀올 수 없는 여정이 마음에 들어 골랐는데 전체 과정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미래처럼 맞물려 돌아가서 큰 고생은 없었다.

앞으로도 라자암팟으로 가는 과정은 지금처럼 불편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어차피 라자암팟의 리조트나 롯지는 많은 여행자들을 수용할 수도 없지만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서 그렇게 되버린다면 발리에 미련이 없어진 것처럼 아쉬운 기억만 남게 될 것 같다. 

라자암팟에서 며칠간 통성명도 하지 않으면서도 유쾌하게 지냈던 그 친구들을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 여행의 기억은 더욱 아름답고 오래가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