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자 암팟(Raja Ampat) - 7 (2019-10-08, Makassar, 우중판당)

2019. 10. 16. 13:06Papua

4일간 머물렀던 메르디안 리조트를 떠나는 날이다. 소롱으로 가는 페리는 오전 9시, 오후 2시 두 편만 있기 때문에 9시 배를 타야 오후 비행기 시각에 맞출 수 있어 8시에 체크아웃을 했는데 같이 메르디안에 들어왔던 배불뚝이 아저씨도 같이 나가는 일정이다. 그러고 보니 며칠 간 같이 지냈던 사람들을 서로 이름도 묻지 않으면서도 불편함이 없이 어울렸다니, 쿨하다.

나가는 날도 라자암팟은 작은 돈을 필요로 한다. 리조트에서 항구까지 픽업해 주는 비용, 항구에서 소롱으로 가는 페리 티켓을 대신 끊어주는 비용, 소롱항에서 공항까지 픽업해 주는 비용. 물론 리조트에서 돈을 받는 것은 아니고 리조트는 거기에 맞게 해줄 기사나 사람을 구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페리 티켓을 사는 데도 대신 해주면 더 좋은 게 있냐고 하니까 그런 건 없다고 한다. 그럼 페리 티켓은 내가 직접 하면 되고 소롱항에서 공항까지 가는 것도 거기서 택시를 타거나 올 때 그랬던 것처럼 걸어가면 되겠다 싶어서 항구까지만 태워주는 비용만 계산하기로 했다.

메르디안의 카운터에는 라지암팟의 지도와 다이빙 포인트를 표시해 놓았는데 많기도 하다. 저기서 6군데만 갔다.

다마스같은 작은 차들이 대중교통으로 많이 사용되는 동네에서 페리 시각에 맞춰 트럭까지 사람들을 실어나른다.

사람들을 태우고 온 차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나갈 때는 운좋게도 페리 티켓비용 빼고는 돈이 나가지 않았다. 같이 나가는 배불뚝이 아저씨가 가방하나에 캐리어가 2개라, 배낭 1개를 메고와서 여유있는 내가 1개를 공항까지 계속 옮겨주었는데 큰 돈은 아니지만 비용을 모두 대신 지불했다. 한 개는 스쿠버 기구를 담은 큰 캐리어었는데 계속 낑낑대면서 옮기니까 무겁지 않냐고 물어본다.

"이건 내가 서울까지 가져갈 거라 그냥 신나는데?" 엄지 척 해준다. 하긴 메르디안에서도 이딴 식으로 농담따먹기를 하고 놀았으니 심드렁하다.

Waisai에 들어오면 반드시 내야 한다는 100만 루피아 짜리 환경세도 결국 내지 않았다. 아무도 냈다고 하는 사람도 없었고 페리가 입항할 때 누가 와서 내라고 한 것도 아닌데 뙤약볕 아래에서 일부러 내러 갈 이유도 없었고, 오기 전에 사이트에서 보았던 환경세를 내는 건물은 보았는데 도시전설처럼 그냥 그런가 보다로 끝났다.

나갈 때는 이코노미의 두 배가 넘는 VIP석으로 페리티켓을 끊었는데 자리가 2층인 거 말고는 좋은 것도 없었다. 밖이 더 잘보이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보이는 건 섬과 바다와 지나가는 배들 뿐이라.

  

 소롱공항에서 발권을 기다리는데 비지니스석으로 발권을 끝낸 배불뚝이 아저씨가 와서 아직도 안끝났냐며 비지니스 카운터로 데리고 가서 발권해주라더니 친구라며 가루다 라운지 입장티켓도 한 장 더 받아주었다. 이번 여행은 크고 작은 행운들이 계속 찾아온다. 

두 시간을 편하게 기다릴 수도 있고 점심값도 굳었다. 배불뚝이 아저씨는 노트북을 꺼내서 그 동안 밀린 일을 하는데 뭄바이에서 근무해서 그런지 스팸메일도 인도에서 온다. 미간에 점이 찍힌 인도여자 사진이 보인다.

 

두 시간여를 비행해서 마카사르에 도착했는데 Adhi가 말한 대로 가이드가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여긴 뭐가 있는지 몰라 아무 데나 가자고 했더니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에 지어졌다는 박물관으로 데리고 갔다. 

 

가이드랑 구경을 하는 데 누군가 와서 자세히 설명을 해 준다. 사실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보통 인도네시아에서는 부르지도 않았는데 와서 호의를 베풀면 돈을 줘야 하는 분위기인데, 역시나 가이드가 팁을 줬다. Adhi가 나는 돈 한푼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자기가 다 알아서 할 거니까 심지어 가이드한테 마지막에 팁도 줄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다음 날 헤어질 때 그냥 10만 루피아를 줬다.

 

박물관은 화려하진 않고 소박한 것들로 전시가 되어 있다. 술라웨시 섬은 주로 3개 민족이 어쩌고 하는데 또라자를 유난히 강조한다. 또라자까지는 마카사르에서 7시간이 걸리는 데 장례식 축제 구경은 적어도 3일 정도 일정이 좋다고 한다.

가게들이 도로에 바짝 붙은 데를 지나 조금 넓은 도로를 달리면서 가이드가 설명을 하는데 새로 짓는 가게는 도로에서 15미터 떨어지게 법을 바꾸니 처음에는 지키다가 처마를 도로로 길게 늘어뜨려서 다시 도로로 최대한 붙인다고 한다. 왜 우중 빤당이라는 이름 대신 마까사르로 이름이 바뀌었냐고 물었더니 딱히 이유가 없다고 한다. 아무래도 1박 2일 일정으로는 이 도시를 이해할 수는 없겠지.

 

두 번째로는 썬셋이 아름답다는 해변으로 간다는데 사람들은 거의 없는 호텔을 지나 공원까지 갔는데 아직 해가 지기에는 한 시간여 정도 남기도 했지만 기다리고 싶진 않았다. 라자암팟에서 더 한걸 질리게 보고 왔는데 눈에 들어올리가 없잖아...

 

저 너머에 마카사르에서 제일 큰 이슬람 사원과 대통령이 방문하면 머무른다는 숙소가 보인다. 가서 보니 둘다 크고 화려하다.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또 돈을 주라고 할 것 같아 뒤에서...

가이드는 크리스찬이라 그런지 약간 불만섞힌 설명을 한다. 마카사르에 널린 게 이슬람 사원인데 또 짓고 있다고. 꽤 큰 10층짜리 사원인데 가까이서 보니 짓다 돈이 부족한 건지 1층이 공사가 끝나지 않아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저녁은 오랜 만에 한국음식을 먹고 싶어서 검색을 해서 나온 Miss Heo를 찾아갔는데 역시나 여느 한국식당처럼 창렬한 가격이다. 젠장 맛이나 좋았으면... 인도네시아의 한국식당은 유난히 중국인이 주인인 데를 많이 보는데  여기도 인테리어를 보니 한국인이 주인은 아닌 것 같다. 심심한 맛이지만 김치맛을 본 것에 만족하고 가이드랑 먹은 게 25만 루피아가 나왔다. 

그래도 고맙게 김밥을 빼먹지는 않았다. 자카르타에서는 김밥을 시키니 빤히 쳐다보고 있는 데도 썰면서 절반을 먹어치우고 접시에 다섯 개를 펼쳐서 가져왔는데... 그런데 김밥이 사소한 몇 가지 들어간거 빼고는 그냥 김하고 밥이다.

가이드는 한국에도 몇 번 왔었는데 인천을 왔다고 한다. 그럼 서울도 와봤겠다고 하니까 그건 아니라고 한다. 그냥 인천항에서 일만하면서 컵라면만 먹었었다고. 

 

호텔에 도착했다. 가이드 말로는 호텔이 지어진 지 3개월도 안됐다고 하는데 Telkom도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냥 모든 게 깔끔하다. 아직도 새로 지어진 건물에서 나는 냄새가 난다.

가이드는 아침 7시에 오겠다고 하는데 날마다 시간대가 바뀌고 있어 좀 헛깔리긴 했는데 오전 구경을 하고 공항까지 가는 시간을 계산을 해보니 일찍 올 필요가 없을 것 같아 8시 반에 보기로 했다.

주스 한 잔을 시키니 25,000 루피아였는데 내일이면 인도네시아를 떠나기 때문에 작은 돈을 쓸 일도 없고 귀찮게 달고 다니기 싫어서 거스름 돈 5천 루피아를 그냥 팁으로 줬더니 고맙다고 도너츠를 가져다 준다. 배부른데... 그냥 잔돈 받을 걸 그랬나...

지금도 지갑에는 쓸 데도 없는 너덜너덜한 Rp. 1000, 2000 지폐들이 가득차 있다. 

이 큰 호텔에 보이는 손님은 나 밖에 없으니 모기만 아니면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냥 소파에 편하게 누워 자고 싶다.

 

오랜만에 찾아온 정든 이 나라를 떠나려면 이제 하루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