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자 암팟(Raja Ampat) - 2 (2019-10-03, 자카르타)

2019. 10. 4. 01:56Papua

간밤에 태풍이 올라왔는데 서울하늘은 깔끔하다. 오랜만에 가루다를 타게 됐는데 왕복 5편이 모두 가루다항공이라 환승하는 수고는 덜 할 것 같다.
 

소롱으로 가기까지 두 번을 타야 하는데 인천공항에서 2장을 모두 발권해 줘서 자카르타에서 덜 귀찮을 거 같다. 발권카운터에서 가루다항공 탑승객들은 최종목적지를 대부분 자카르타나 발리라고 말하는데 소롱이라고 하니 다시 물어보더니 연락처를 묻는다.

거기가 여행자제 지역이라 그런 듯 한데, 어울리지 않게 소롱(Sorong)이란 이름은 예쁘다. 자카르타에서 소롱행 비행기는 대부분 마카사르에서 갈아타고 가는것 같은데 운좋게 한 번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땡큐 가루다~


첫 비행이라 그런지 7시간 동안 지루하지도 피곤하지도 않아서 잠을 자지 않았는데, 출장 때는 항상 칼리만탄 섬을 지날 때면 이제 곧 도착이라는 생각과 앞으로 벌어질 일에 이런저런 고민들이 머리속에 차오르기 시작했었지만, 이젠 여행이라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아 좋다. 다만 비행은 내일 아침에 끝나니 아직 길이 멀고 대한항공은 항상 밤에 도착했는데 가루다는 낮에 도착하니 9시간을 공항에서 대기하지 말고 자카르타로 가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환승대기 중에 밖으로 나갈 수 있으려나 싶은데 절대 안되는 나라는 아니니까...

 

가루다의 날개 무늬와 컬러는 인도네시아스럽지 않은 세련된 디자인이다.

 

수카르노 하따 공항이 몇 년전부터 신청사로 바뀌어서 깔끔한데 처음이라 계속 헤메기만 했다. 공항은 큰데 동선이 불편해 보이고, 과거처럼 도착비자를 사야하는 줄 알고 입국장에서 맴돌다가 1시간 넘게 시간을 허비해 버렸다. 그래도 반갑다, 자카르타야!

수하물로 보낸 짐이 없이 작은 배낭을 하나 메고 왔기 때문에 구태여 환승터미널로 가서 대기할 필요도 없어 그리운 자카르타 시내를 다녀오기로 했다.


공항에서 자카르타로 들어가는 철도가 얼마 전에 개통되서 택시가 아닌 열차로 가보기로 했는데, 무인발권기는 입력하고 선택할 것이 많아 처음에는 어려웠는데 해보고 나니 간단하다.
현금은 안되고 신용카드는 가능한데 중간에 전화번호 입력은 현지 번호가 없어서 그냥 한국번호를 입력했는데 문제는 없다. 게이트에서 바코드를 대면 열리는데 아무 때나 열리지는 않고 출발 15분 전부터 가능하다. 인천공항이랑 비교하면 여기는 전보다는 많이 편리해졌지만 여전히 미묘하게 불편하다. 


열차객실도 깔끔한데 달리는 동안은 흔들림이 좀 심한 편이다. 그래도 40여분 만에 자카르타 시내에 도착할 수 있다는게 신난다.

10여년만에 다시 찾은 Menara Multimedia TELKOM 빌딩. 항상 밤을 새면서... 12월 31일 밤을 모나스에서 터지는 폭죽을 보면서 새해 축하와 쓸쓸함이 함께 했던 곳.  Adhi가 회의가 늦게 끝나게 되어 기다리는 동안 새로 생긴 카페에서 진한 카라멜 라떼를 마셨다. 이 녀석은 항상 야근이네...

사무실로 들어간다고 하면 들여보내 줄 것 같은데 음... 여기 사람들도 많이 바뀌었을 테니 모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인사하려니 쑥스러워 그냥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 때 그 사람들은 얼마나 남아 있으려나.

 


자카르타를 마지막으로 떠나게 된 후로 가끔 그리웠던 곳. 분위기가 비슷해서 우리끼리는 여기를 종로라고 불렀다. 매번 Jalan Mangga Besar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Prana와 Adhi가 와서 거긴 위험하니 Menara Multimedia로 오라고 했었는데. 이 거리는 과거에 비해 큰 변화가 없어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 행복하다.


그리고 Adhi와 함께 오랫만에 찾은 Sate Senayan. 신입 때부터 보고 살았는데 이제는 야근에 찌들어 배불뚝이가 되버렸다. 처음에는 자주 티격태격하고 자존심 싸움에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며면서 새벽에 싸우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오랫동안 보지 않아도, 노력하지 않아도 편한 사이라 좋다. 텔콤을 퇴직하고 보고르에서 월급(?)을 받으며 놀고 있는 프라나와 통화를 했다. 항상 프라나는 나를 부를 때 쪼이라고 했었다. 가끔은 화가 난 얼굴인데도 내게 화를 낸 적은 없었고 오히려 어설픈 영어로 충고를 해주었다. 너는 인도네시아 문화를 잘 이해해줘서 좋다고. 사실 내가 그렇게 그 문화를 잘 이해한건 아닌데, 그냥 나보다 한참 어른이라 공손하기도 했고, 호텔세탁비가 비싸서 바띡을 사서 입고 다니는 것을 꽤 마음에 들어했다. 사실 프라나가 우리를 좋아한 건 아디 녀석이 우리랑 싸우면서도 프라나에게는 좋게 이야기해준게 크긴 했다. 전형적인 성격급한 한국인들인데 투덜투덜하면서도 밤을 새서 일을 하고 있으니...

가끔 이 식당에서 둘러앉아 시켜먹곤 했었다. 프라나와 아디는 항상 우리가 밥값을 계산하지 못하게 했다. 우리는 엔지니어고 손님이니까 돈내는 게 아니라고. 매번 그렇게 해주는게 부담스러워서 가끔 우리끼리 몰래 먹거나 점심을 굶곤 했었다.
사무실 사람들도 모두 친절했는데 대부분은 잘 아는 사이가 아닌데도 승진이 안되는 터줏대감인 프라나가 가끔 당부를 하면 모두들 와서 친절하게 도와주었다. 
 

Adhi가 택시까지 불러줘서 제 시간에 다시 공항으로 돌아왔다. 0시부터 보딩. 소롱행 비행기들 도착시각은 대부분 오전 6시이다. 6시간이 걸리는 줄 알았는데 시차가 2시간 차이라 네 시간이 걸린다. 

 

게이트 앞에 대기 중이라 내가 타고 갈 비행기인줄 알았는데 갑자기 떠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