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자 암팟(Raja Ampat) - 5 (2019-10-06, Waisai town)
오늘은 딱히 계획이 없어 숙소에 머물다가 구글맵을 보니 Waisai에도 카페나 가게같은 시설들이 있는 것 같아 리조트에만 머물다가 떠나기에는 여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 샌달을 신고 리조트 밖으로 나와 지도만 보고 언덕을 넘어 걷기 시작했다. 물론 출발한지 10분 만에 또 후회가 되었지만... 해는 머리 위에 있는데 모자도 선글래스도 안챙기고 10만 루피아 지폐에 반바지에 나시하나 걸쳐입고 비포장된 도로를 걸으려니 이게 무슨 짓인가 싶은데 온 길을 돌아가는 건 싫어서 그냥 계속 가보기로 했다.
리조트를 나오면 바로 보이는 가게인데 아직은 목이 타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아무 것도 없는 언덕길을 지나가는 오토바이 먼지를 뒤집어 쓰며 넘어가면서 그냥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드는데 여기서 돌아가면 계속 Waisai의 궁금증을 가지고 떠날 것 같아 그냥 가보기로 했다.
20분 정도를 걸으니 마을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주말이라 교회예배를 드리는 것 같다.
오토바이가 지나갈 때마다 태워달라고 하고 싶은데 목적지를 말할 수 없으니 그냥 쳐다보면서 보내기만 한다.
계속 도로로만 걷다가 해변이 보이는 마을이 보여 들어갔더니 선착장이 나오는데 한국에서는 멋진 풍경일 수도 있는데 여기서는 그저그런 흔한 모습이다. 아니 라자암팟에서는 전혀 멋지지 않은 풍경이다.
여기에도 롯지가 있는 걸 보니 여행객들이 찾긴 할 것 같은데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 내가 3일간 숙소를 검색하면서 여기 중 몇 군데도 봤겠지 싶은데 안하길 잘 한 것 같다. 메르디안이 비싸긴 하지만 돈이 궁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저 그래...멋있지 않아... 그냥 나는 더워서 머리부터 어깨까지 불이 붙은 것 같아.
해변을 벗어나서 다시 도로를 따라 걸으니 바도 있다. 전혀 안어울리는 위치에 주위의 건물들과 어울리지 않는 색깔인데 아무래도 여행객들만 찾을 것 같다.
소롱에서도 항구까지 걸어가면서 비슷한 조형을 보긴 했는데 무슨 의미로 만들어 놓은 건지 모르겠다. 그냥 그래서 만들었겠지
구글맵으로 보면 대로가 있고 쇼핑몰, 카페, 호텔표시가 되어 있어서 건물들이 들어선 거리를 상상했는데 그냥 벌판이다. 이제 절반인데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목이 타서 뭐라도 마셔야 할 것 같아 가게를 찾아들어 가서 콜라를 하나 사들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별로 볼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도 나름 소득이겠지. 혹시 다음에 Waisai를 다시 오게 되면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아 여기를 오지 않을 거니까.
지도에는 길표시가 되어 있는데 이상하게 점점 올라가기 시작하더니 여기를 지나 조금 더 가니 길이 끊겼다. 길이 사라진 건 아니고 그냥 산꼭대기가 나와서 숲길을 통과해야 했는데 반바지에 샌달을 신은 채로 지나가려니 뱀이라도 물리면 끝장일 것 같아 땅만 보면서 고라니가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팔짝팔짝 뛰면서 풀이 덜 자란 곳을 골라서 10여분 간을 내려왔다.
두 시간여 만에 메르디안에 거의 다다르니 생긴지 얼마 안된것 같은 카페가 있어 옆 가게에서 8천 루피아를 주고 콜라를 사마시고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주인이 메뉴판을 왜 줬는지 모르겠다... 위에서 줄줄이 물어봐도 다 떨어지고 없다고 한다. 결국 환타를 시켰는데 옆 가게 가서 캔하나를 가져온다. 방금 옆 가게에서 콜라를 사먹고 왔는데 왜 8천루피아 짜리 환타를 여기서 만루피아를 주고 마셔야 하는지. 맛도 한국 환타맛이 아니라 달달거리기만 한 설탕물느낌이다.
얼음이라도 주면 좋겠는데 그것도 없다고 한다.
인테리어는 소박해서 좋지도 나쁘지도 않는데 캔하나 마시면서 멀뚱멀뚱 앉아있기도 쌩뚱맞아 나왔는데 주인이 쫒아나오더니 2천 루피아를 준다. 나쁘지 않네.
마을을 한바퀴 돌아본거 말고는 한 일이 없어 배도 고프지 않아 점심은 건너뛰고 메르디안의 맹그로브 숲을 지나 선착장을 가니 리조트에서 쿠션을 가져다 놓아서 깔고 그냥 낮잠을 잔다. 참 여유있는 좋은 시간이다. 해가 이동하면서 그늘이 햇볕에 드러나기 시작했는 데도 옮기는게 귀찮아서 그냥 개운하게 태워가며 자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은 리조트에서 뭘 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인데 스노클링을 하면 또 몇 시간을 물에 떠 있어야 하는 건 귀찮아서 카운터에 체험 다이빙을 물어보니 가능하다고 한다. 오전에 이론과 풀장에서 연습을 하고 오후에 보트를 타고 나가서 실제 다이빙을 할 거라고 하는데 가격은 역시 20여만원이다.
이젠 메르디안 프라이스가 놀랍지도 않다. 어차피 바다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섬이라 밥먹는 거 말고는 쓴 돈도 없고 Adhi가 자카르타에서 무려 100만 루피아를 쓰라고 줬기 때문에 여전히 현금다발이 쌓여있어 하겠다고 했는데 모레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하니 잠수 후에 최소 하루 안에 비행기를 타면 위험해서 또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 밤에 내일 오전에 하기로 한 이론과 풀장연습을 하고 오전에만 스쿠버 다이빙을 하기로 했는데 첫 날 함께 갔던 마스터 가이드가 와서 1시간 만에 이론과 풀장 실습을 끝마쳤다. 내가 영어를 이렇게 잘 알아먹을 리가 없는데.
스쿠버 다이빙을 마치고 들어온 배불뚝이 아저씨에게 내일은 스노클링이 아니라 다이빙을 같이 갈거라고 했더니 하이파이브를 해준다. 내가 없어서 오늘은 좀 심심했나 보다.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또 선착장 야경을 즐기러 나가는데 이 녀석은 항상 이 시간에 여길 지키고 있다. 만지는 건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선착장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모습도 좋고,
메르디안의 저 밤풍경은 너무 좋다. 일행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이유로 찾아와서인지 서로 즐겁게 이야기하고 헤어지는 곳이다. 여기서 아시안은 나 혼자 뿐이라 영어 울렁증이 가끔 올라오는 것 말고는 모든 게 좋다.
또 쿠션에 누워서 밤하늘을 보며 잠이 들었는데 모기가 가끔 물어대서 1시간 여를 누워있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들어가려다 도감이 있어 앉아서 보고 있는데 이 녀석이 갑자기 나타나서 귀찮게 한다. 자꾸 쓰다듬어 달라고 몸을 비벼대서 쓰담쓰담해주면서 남은 시간을 보냈다.